나는 하루 종일 내 몸과 밀착된 스마트폰, 노트북 같은 디바이스들과 인터넷 미디어를 통해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다량의 디지털 정보를 마주한다. 분절적으로, 하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정보는 뼈대도 정해진 틀도 없이 꿀렁꿀렁 흘러내린다. 그것들의 표면이 내게는 매끄럽게 느껴진다. 매끄럽기에 그것을 삼키는 건 거부감이 없다. 나는 소화 없는 섭취를 반복한다. 일단 먹고 보는 것들이 내 안에 고여 있다.

 나의 기억과 삶의 시간을, 나는 가상의 세계에서 구성해 왔다. 때문에 가상 세계의 작동 방식 그 자체를 작업에 끌어들이는 것, 그리고 그 매개체인 디바이스를 (연약하고, 복잡하고, 계속 업데이트 되어온, 호환되지 않는) 오브제로서 다루는 일은 작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진행의 갈래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유물화와 자동화 프로그램이라는 소주제로 분류해본다.

 

  디지털 기록은 비가시적이다.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특정 장치-디바이스가 필요하다. 그러나 디지털 디바이스가 작동하는 수명은 짧고 그 세대가 바뀌는 주기는 너무나 빠르다. 내가 몇 년간 사용하던 피쳐폰이 더이상 작동하지 않았을 때, 그 속에 담겨있던 소중한 텍스트와 이미지 기록들은 더 이상 읽을 수 없어졌다. 나는 그렇게 유실된 기억을 ‘유물화’했다.

 ‘자동화 프로그램’에서는 미리 입력된 패턴을 계속 반복하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SNS의 내용을 캡쳐 해서 인쇄하거나, 메신저를 사용하여 끝없는 대화를 나누게 한다. 이 작동은 관람자가 작품을 본 그 시간에서 발생하는 정보의 움직임을 즉각적으로 내비치며, 디바이스를 인간이 없는 자리에 혼자서 작동하게 하여 마치 유령같은 장면을 연출한다. 그것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한 발 떨어진 현재에서 목도할 때 어떤 미묘한 감정적인 발생이 일어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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